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토니오 비발디 (문단 편집) === 오페라 작곡가 비발디 === 명성을 얻은 비발디는 활발하게 연주여행과 작곡활동을 했으며 [[토스카나 대공국]]의 페르디난도 대공이라는 후원자도 생겼다. 1705년 비발디는 베네치아에서 첫 작품집을 출간했고 1709년에 두번째 작품집, 1711년에는 유명한 세번째 작품집 '''조화의 영감(L'estro armonico, the Harmonic Inspiration)'''을 출간했고[* 음악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작품집이다. 바흐가 오르간이나 하프시코드용으로 개작한 비발디의 곡 가운데 6곡이 이 작품집에 속한 곡이다.] 1714년에는 4번째 작품집 라 스트라바간차(La stravaganza,the Extravagance)를 출간했다. 이후 비발디는 1729년까지 총 12권의 작품집을 출간하게 된다.[* 비발디의 대표작인 사계는 8집에 수록되어 있다.] 이후에도 기악작품을 썼지만 왜 작품집이 출간되지 않았는지는 후술되는 내용 참조. 특히 세 번째 작품집 조화의 영감은 베네치아가 아니라 [[네덜란드 공화국|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출판됐는데, 이후 비발디는 자신의 작품집을 가급적 외국에서 간행해서 유럽 전역에 자신의 곡에 대한 인지도를 높였다. 특히 유럽 전역에 출판망을 가지고 있고 신곡 홍보 능력이 뛰어났던 암스테르담의 출판사를 많이 이용했다. 또한 비발디는 외국에서 왕족이나 귀족들이 베네치아를 방문하면 일부러 찾아가서 작품집을 헌정하거나 곡을 바치면서 그들의 환심을 샀으며 그들에게 작곡을 의뢰받기도 했다.[* 비발디는 일종의 베네치아의 자랑거리였기 때문에 은근히 베네치아 당국에서도 이 만남을 권장했다고 한다.] 전술한 것처럼 비발디는 두 번째 작품집을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4세에게 헌정했으며 세번째 작품집 화성의 영감은 [[메디치 가문]]의 '페르디난도 데 메디치' 대공에게 헌정했다. 1710년부터 비발디는 사실상 전업작곡가가 됐지만 공식적으로 1733년경까지는 피에타 학교의 선생직을 유지했으며 자신의 학교 학생들을 위한 작품도 계속 썼다. 비발디의 종교음악중에는 여성 합창이나 독창을 위한 곡들이 많은데 이들은 모두 자신이 몸담고 있는 피에타 학교의 여학생들을 위해 쓴 작품이다. 또 자신의 기악 작품집에 수록된 곡 가운데 상당수가 피에타 학교 학생들을 위해 쓴 곡을 손질하거나 개작한 것이다. 비발디는 엄청나게 빠른 작곡속도로 유명했다. 비발디 당시에는 작곡법이 정형화되어 있었고 저작권도 없었기 때문에 오늘날보다 훨씬 빠르게 많은 곡을 만들어낼 수 있었으며 청중들도 기존에 작곡된 곡을 계속 듣기보다는 신곡을 선호했기 때문에 당시 작곡가의 능력은 곧 속작 능력을 의미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비발디의 작곡 속도는 정말 특출나기로 유명했는데, 비발디 스스로 필사가가 악보를 베끼는 속도보다 자신의 작곡속도가 더 빠르다고 자랑을 했을 정도. 그래서인지 당시의 기록들은 'Virtuoso Antonio Vivaldi' 이런 식으로 비발디의 이름 앞에 '비르투오소(거장)'라는 일종의 존칭을 붙이고 있다. 작곡가로 인정받은 비발디는 본격적으로 오페라 작곡에 관심을 갖게 된다. 비발디가 활동할 당시의 베네치아는 [[로마]], [[나폴리]]와 함께 유럽 바로크 오페라의 3대 본산이었으며[* 다만 바로크 중기 이후부터는 프랑스 양식의 오페라도 독자적인 음악성을 구축하고 있었는데, 이는 이탈리아 출신의 작곡가 [[장바티스트 륄리]]의 노력 덕분이었다.] 베네치아에서 인기 있는 오페라 작곡가나 가수들은 큰 부와 명성을 얻고 있었다. 때문에 비발디도 당연히 오페라 작곡가로 성공하려는 욕심을 갖고 있었다. 비발디는 1713년 자신의 첫 오페라 오토네(Ottone in villa)를 상연했으며 1714년에는 아예 산탄젤로 극장(Teatro Sant'Angelo)의 감독이 돼서 작곡 뿐만 아니라 오페라의 공연과 흥행까지 맡았다. 오페라 작곡가로 가능성을 인정받은 비발디는 오토네를 시작으로 만토바로 가기까지 4년 동안 베네치아에서 무려 10곡의 오페라를 무대에 올렸다. 1715년 이후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비발디의 명성은 베네치아를 넘어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졌으며 몇몇 오페라는 이탈리아어 권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공연되기도 했다. 비발디 본인은 말년에 쓴 자신의 편지에 평생 94개의 오페라를 작곡했다는 이야기를 남겼는데, 현존하는 비발디의 오페라는 공연기록만 있고 악보가 실전된 경우를 포함해서 51작품 정도가 확인되고 있다. 이 오페라의 숫자만 보아도 그가 상당한 인기 오페라 작곡가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